📅 Monday, August 17, 2026 ✍️쓰리김의 성경맛집
누가복음 10장의 율법교사와 누가복음 1장의 마리아는 모두 질문을 했습니다.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에서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까지, 우리의 질문을 바꾸시며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에드먼턴의 밤은 참 아름답습니다.
해가 지고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하면 낮에 보았던 풍경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전혀 다른 도시가 됩니다.
오늘은 그 야경을 바라보면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 「비창(Pathétique)」 2악장, Adagio cantabile 🎹를 다시 들어봅니다.
이 곡을 들으면 저는 약 4년전 어느 새벽으로 돌아갑니다.
그날도 저는 누가복음을 읽고 있었습니다.
창밖에는 비가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었고, 저는 누가복음 10장 25~37절을 붙잡고 책상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 이야기가 담긴 본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날 이 본문의 제목을 마음대로 바꾸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 율법교사의 고뇌 」
주인공을 사마리아 사람이 아니라 율법교사로 바꾸어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였습니다.
"어디 한번 대답해 보시지요."
이 본문은 한 율법교사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 10:25)
"Teacher," he asked,"what must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Luke 10:25)
성경은 이사람이 정말 영생이 궁금해서 예수님을 찾아온게 아니라, "예수를 시험하여"물었다고 기록합니다.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는 이런 자신감이 있지 않았을까요?
'나는 율법 전문가 입니다. 어디, 예수선생 내 질문에 한번 대답해 보시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냥 당하실 분은 아니시지요.
예수님은 오히려 그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십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뜻밖의 역질문으로 한방 먹는 율법교사 선생.....
그러나 율법 교사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완벽하게 대답합니다. ( 오~~~대단해!!)
예수님도 그 대답을 인정하십니다.
" 네 대답이 옳도다."
여기까지는 아마 기분이 꽤 좋았겠지요? 그런데 바로 다음 말씀이 따라옵니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아............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율법교사의 마음에 첫번째 균열이 생기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봅니다.
'잠깐만.... 내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왔는데 말이야.... 아니 지금 오히려 내가 시험을 받고 있는게 아닌가?'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율법교사는 다시 질문합니다.
"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 10:29)
그런데 성경은 이번에도 그의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록합니다. 이부분이 참 재미있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그냥 두고 보시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셨죠... 왜 ? 쓰리김 보라고... ㅜㅜ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처음에는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던 사람이 이제는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시작합니다.
'좋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압니다. 칫! 그리고 나는 율법을 지키며 살았단 말입니다.
그러니 어디까지가 이웃인지 범위만 좀 정확하게 정해 주십시오.'
그런데 예수님은 또 정답을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사람이 죽어가는데 세상은 너무 평온합니다.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이 길에 쓰러져 있습니다.
제사장이 지나갑니다.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갑니다.
레위인도 그 곳으로 옵니다.
그도 역시 보고 피하여 지나갑니다.
저는 이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비발디의 「 사계 」중 겨울 2악장 Largo가 떠오릅니다.
너무나 평온하고 서정적인 음악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무섭습니다.
한사람이 길가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누군가는 자기길을 걸어가고,
사람들은 자신의 하루를 살아가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게 흘러갑니다.
사람이 죽어가도 세상은 너무 평온합니다.
그리고 세번째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던 율법교사에게는 가장 불편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멈춥니다.
상처를 싸매주고, 자기 짐승에 태우고, 주막으로 데려가 돌봅니다.
예수님은 질문을 바꾸셨습니다.
이야기를 마치신 예수님께서 율법교사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율법교사가 했던 질문과 예수님의 질문은 다릅니다.
율법교사는 물었습니다.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질문의 방향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누구까지 사랑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을
"너는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주고 있느냐?"
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버리셨습니다.
율법교사는 대답합니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그날 새벽, 저는 율법교사였습니다.
약 4년전 저는 이 말씀을 읽다가 한동안 책상앞에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베토벤의 「비창 」2악장이 흐르고 이었습니다.
창밖에는 비가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속에 제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제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기를 바랐습니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율법교사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알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 쳤습니다.
' 아 나는 사마리아 사람이 아니였어...나는 율법교사였어...'
그 순간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나는 그 율법교사만큼 율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싶었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고,
내 행동을 정당화 하고 싶었고,
때로는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까지만 이웃으로 정하고 싶었고,
사마리아인처럼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등장하면
등을 돌리고 피하여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알고도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제대로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골라가며 사랑하고
사랑하기 싫은 사람은 보고도 피하여 지나갔던 ....
그날 새벽,
클래식 선율은 아름답게 연주를 했지만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폭우소리에 나의 흐느끼는 소리가 묻혀서 들리지 않았던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저는 그날 이후의 율법교사를 상상했습니다.
그날밤 그도 집으로 돌아가 자신이 평생 연구했던 율법 두루마리 앞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있지 않았을까?
그가 야비한 사람이 아니였다면 그도 나처럼 울었을까?
나는 율법을 알고 있는가?
그렇다.
나는 정답을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의 귓가에서도 예수님의 한마디가 계속 맴돌지 않았을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라. 하라. "
저는 그 사람의 고뇌 속에서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4년후 , 또 한 사람의 질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일.
저는 다시 누가복음을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누가복음 1장입니다.
또 누군가가 질문합니다.
마리아 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합니다.
마리아가 묻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
"How will this be? "
오늘 설교에서 마음에 오래 남은 문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Faith can ask questions."
믿음도 질문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이해 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질문이 없다는 뜻도 아니었습니다.
" 하나님, 왜요"
" 하나님, 어떻게요?"
" 하나님,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믿음 안에서도 우리는 질문할 수 있습니다.
같은 질문 같지만, 다른 질문
누가복음 1장에서는 마리아보다 먼저 질문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가랴 입니다.
천사가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하자 그가 물어봅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How shall I know this?
그런데 마이라는 묻습니다.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How will this be?
사가랴는 자신이 믿을 수 있도록 확인할 증거를 묻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 질지를 묻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나도 때때로 질문이 생기는데... 질문이 생기는것은 믿음이 작아서가 아니였어...
중요한것은 질문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고
왜 그 질문을 하고 있는가야!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질문을 어디로 데리고 가시는가야!
질문을 바꾸시는 하나님
4년전 제가 읽었던 누가복음 10장에서 율법교사는 질문했습니다.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예수님은 그의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에 질문을 바꾸어 주십니다.
"너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주고 있느냐?"
오늘 누가복음 1장에서 마리아도 질문했습니다.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그러나 마리아는 어떤 설명을 듣고 이해를 한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질문은 결국 하나의 고백에 도착합니다.
📖오늘 쓰리김의 성경맛집에서 나누고 싶은 말씀 바로 누가복음 1장 38절 말씀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누가복음 1장 38절)
"I am the Lord's servant," Mary answered.
"May your word to me be fulfilled."Then the angel left her.(Luke 1:38)
이 말씀을 읽는데 4년전에 예수님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그리고 오늘 마리아의 대답이 이어집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나는 주님의 명령이고,
하나는 그 말씀 앞에 선 사람의 대답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답을 원하는데 하나님은 나의 질문을 바꾸십니다.
돌아보면 저도 하나님께 참 많은 질문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왜요?
언제까지요?
왜 저 사람은 저렇습니까?
왜 제게는 이것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저는 하나님께 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답보다 먼저
제 질문을 바꾸셨습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습니까?
라고 물었는데.
그러는 너는 어떠하냐?라고 물어보십니다.
누구까지 사랑해야 합니까?
라고 물었는데,
너는 오늘 누구의 이웃이 되어주었느냐?라고 물어보십니다.
왜 제 인생은 이렇게 흘러갑니까?
라고 물었는데,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나를 신뢰 하고 따라오겠니?" 라고 물어보십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께서 질문을 바꾸실 때마다
조금씩 저는 바뀌어 갔습니다.
상황이 바뀌지 않았지만 제가 바뀌어 가고
그러면서 저의 상황도 계속 바뀌어 갑니다.
오늘 에드먼턴의 끝도 없이 펼쳐진 밤하늘의 야경을 보면서
나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쓰리김의 추천 음악
🎼 Gabriel's Oboe
오늘 글의 마지막에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Gabriel's Oboe〉를 듣고 싶습니다.
영화 《미션》 속 가브리엘 신부의 오보에 선율입니다.
그리고 오늘 누가복음에서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천사의 이름 역시 가브리엘입니다.
서로 다른 두 이야기이지만 오늘은 그 이름 하나가 이상하게 마음에 머뭅니다.
말씀을 전하는 가브리엘.
그리고 그 말씀 앞에서 질문하는 마리아.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그러나 마리아의 질문은 결국 순종으로 끝납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m5u0OFF_E&list=RDV-m5u0OFF_E&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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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쓰리김이 말씀앞에서 기도하며 직접 묵상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무단 복제 및 무단 전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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